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이유
나치당 지도자인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을 비롯한 다른 소수 집단을 국가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공격하여 학살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히틀러와 나치당은 이러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반유대주의를 이용하여 유대인을 비하하고, 모욕하며, 적대감을 조장하였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흑인 피부색이 흰색보다 우월하다는 인종주의 이념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유대인을 비롯한 다른 인종이나 종교 집단을 인간이 아닌 것으로 여겨, 몰아내거나 학살하는 정책을 집행했습니다.
또한, 히틀러는 유대인을 독일 경제 위기의 책임자로 비난했으며, 유대인들이 독일의 경제적인 불황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독일 사회의 해체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외에도,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오래된 민족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에 근거하여, 그들이 독일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요소로 인식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이 모두 유대인 학살의 배경이 되었으며,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사건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성장배경
아돌프 히틀러는 188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브라우나우 출신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예술에 뛰어나며, 화가나 건축가가 되는 꿈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에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에 참전하였으며, 이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독일이 패배하면서 실망하고 분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9년, 히틀러는 독일 노동자당에 가입하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지하는 우익 정치단체인 독일 국가 사회주의 동맹 (DNSAP)에 가입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히틀러는 자신의 리더십과 저력을 인정받아 나치당의 지도자로 선출되어 독일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일을 할 것입니다.
히틀러는 전후의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의 정치적 생애는 다소 불안정하고, 여러 가지 우연과 계산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그가 국가적 위기를 맞으면서도 독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통령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유대인 학살 피해자 숫자
나치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인종 및 정치적 그룹을 대상으로 대규모 학살을 집행했습니다. 이 중에서 유대인 학살은 가장 잔인하고 대규모였으며, 추산에 따르면 약 6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살해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나치의 집행관들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동유럽에서 수행한 홀로코스트입니다. 홀로코스트는 최소 55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집단적으로 살해되었다고 추산되며, 이 중 약 1백만 명은 오스웨카우 증설소, 벨제크, 소비보르 등의 집행소에서 가스 챔버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다른 유대인들은 강제 노동으로 학살당하거나, 질병, 굶주림, 총살 등의 방법으로 살해되었습니다.
히틀러의 최후
히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 4월 30일 자살했습니다. 그는 나치 독일의 패배를 인정하며, 그동안 일으켰던 모든 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총으로 몸을 쏴 자살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그와 가까이 지내던 이들이 불을 놓아 태웠습니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전, 나치당과 나치 정부의 대부분이 이미 무너져 내렸고 독일군도 패배가 불가피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더욱이 신화화되어 내부 인민군이라고 불리는 믿음직한 독실한 나치 군인들을 지시하여 절대적인 패배 상황에서도 도시를 방어하고 전쟁을 지속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독일인과 많은 다른 국가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불필요한 희생을 했으며, 그의 결단이 독일의 내전과 세계 대전의 종전을 악화시켰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유대인 학살 피해자 보상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양한 나라들은 유대인 학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보상을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1965년, 독일 연방정부는 유대인 학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생존한 학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후 독일은 생존자에게 지급한 보상금 총액이 약 7,000억 유로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1951년부터 학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캘리포니아 주 시내의 한 은행은 유대인 학살 피해자들의 계좌를 찾아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나라들에서 유대인 학살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거나 유적 지정 등의 방법으로 추모와 위로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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