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요즘은 1인 가구부터 해서 동물을 키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단순히 예전처럼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애완동물’이라고 부르기보다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나의 삶의 일부분인 존재로 인식이 되어 점점 동물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좋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키우기가 까다로울 수도 있다. 더 잘해주고 싶은데 마음만 앞서고 미숙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당신도 반려견과 대화하고 있나요?]
혹시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그들과 대화를 시도해 본적이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은 인간의 언어 기준으로 동물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애정을 표시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일뿐 정작 내가 키우는 동물이 어떤 행동으로 표현을 하고, 나에게 신호를 주는지 주위 깊게 파고든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인간과 동물 사이에 보디랭귀지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사고들이 꽤 있다. 한 보호자가 자신이 키우는 ‘시츄’를 한 마리 데리고 들어온 적이 있다. 그 개는 주변 사물에 관심이 많음과 동시에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그런 행동에 주인도 손사래를 칠 정도였다. 기질이 예민하고 컨트롤이 힘든 아이라고 보호자는 설명했다. 자세히 시츄를 훑어보니 무엇이 그리 불안한지 연신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희미하게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보며 전문가는 느꼈다
“이 아이는 사나운게 아니라, 두려운 거구나” 앞서 보호자가 설명했던 사납고 공격적인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개의 귀와 목덜미가 심하게 부어있었다. 언제부터였냐 물으니 어릴 때부터 초크 체인을 달고 있었는데 목을 조이는 체인 특성상 목 디스크, 그로 인한 염증 부종 등의 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전문가는 보호자에게 설명을 했다. “지금 이 개는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너무 힘든 거예요”..
얼마 뒤 만난 보호자의 안색은 꽃이 폈다. 그날 이후로 집에서 할 수 있는 염증 가라앉는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 효과로 시츄의 붓기와 염증이 눈에 띄게 호전이 되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증상이 좋아지자 말자, 주변 개들 에게도 굉장히 호의적이고 온순해졌다고 한다.
주인은 그제서야 나의 개가 사나운 개가 아니었는데, 나 혼자만의 착각으로 여태껏 오해를 한 것이라고 굉장히 미안해했다. 정작 아픈 곳은 마음이었는데 그 속내를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처럼 보통의 반려견의 문제는 그 반려견에 대한 오해로 시작이 된다. 앞서 얘기한 사례 처럼 겉으로만 보이는 녀석들의 모습에 사람은 그 개의 특성 자체를 단결 지어 버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그 아이들의 눈빛에 갇혀있는 간절한 진심을 알아주는 게 급선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개는 사람의 언어도 습득한다]
가만히 보면 반려견들은 사람의 무의식적인 습관, 말투,표정을 다 캐치하고 있다. 정작 반려견에게 ‘손’ ‘기다려’ 등 말로 얘기를 할 때보다 평소 내가 밥 먹기 전에 그릇을 고른다거나, 산책 가기 전에 가방을 쳐다본다던지 내가 미처 의식하지 않고 하는 행동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사람도 포유류 동물이다. 언어라는 것이 발달이 되어 의사소통의 중요 매개체로 되어있지만 기본적인 본질은 보디랭귀지를 통해 전달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엘버트 메라비언이라는 연구가는 인간의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수년간 연구하며 얻은 자료가 있다. 바로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할 때 언어보다는 말 할 때 표정이나 제스처 등을 보고 그 사람의 기분이나 말에 담긴 감정을 읽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언어적 소통보다는 비언어적인 제스처, 말투, 표정에 반응을 하였고 그걸로 상대방이 나에게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 구분한다고 하였다.
이 처럼 사람이라고 100% 언어로 소통하는것이 아니다. 이건 말 못 하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동물들 역시, 보디랭귀지에 익숙하지만 주인의 평소와 다른 화난 말투나, 표정을 보고 주인의 감정을 읽어내 린다.
[반려견과 친해지기]
연구결과 반려견은 시각적 소통에 더 능통 하다고 얘기했다. 예시를 보자면 주인이 반려견에게 ‘앉아’라는 행동을 가르친다고 하자. 보통의 사람은 말로 ‘앉아’라고 얘기 한 다음 한 손에는 간식을 들고 서있다. 그러나 개의 입장에서는 ‘앉아’는 청각적 자극이고, 일단 내 눈앞에 보이는 저 간식에게 관심을 뒀기 때문에 자기 머리 위에 있는 간식을 올려다보며 자연스레 엉덩이를 바닥에 붙인다. 그럼 주인의 입장에서는 이건 ‘앉아’에 성공한 것이라 여기고 기뻐한다. 그러나 간식이 없는 상황에서 똑같이 앉아 라고 명령했을 때 반려견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들은 이미 간식을 보며 앉아버리는 시각적 추구에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개는 서열이 높은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의 말을 더 집중한다” -저자-
우리의 개들은 훈련 받기 위해 내 곁에 온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삶의 구성원중 하나로써, 내가 책임지고 함께 해야 하는 생명으로써 우리에게 온 것이다. 반려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결이 된다면 최고의 텔레파시가 통할 것이고, 그 텔레파시를 통해 조금 더 그들의 몸짓과 표정, 신호를 더 유심히 보고 소통할 수 있도록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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